소개
출신 : 595년 ~ 673년 8월 18일
김유신은 신라의 화랑의 우두머리였으며 태대각간이었고 신라에 귀순한 가야 왕족의 후손으로서,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통일하고 당나라도 격퇴시켜 삼국 통일을 이루는 데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 신라의 장군이며, 정치가입니다.
태종무열왕과 문무왕을 도와 신라의 삼국 통일 전쟁을 주도하였으며, 진평왕부터 문무왕에 이르는 다섯 명의 왕을 섬겨 신라 정권의 중추적 인물로 성장하였습니다. 신하로서 왕으로 추존된 유일한 인물이며, 무열왕의 즉위 및 삼국 통일 전쟁 등에 기여한 공적을 인정받아 왕족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순충장렬흥무대왕으로 추존되었습니다. 신라를 포함하여 고려와 조선에 이르기까지 성신, 주석지신으로 추앙받았다. 또한 관창, 사다함과 함께 신라의 3대 화랑입니다.
출생
김유신은 금관국을 세운 수로왕의 12대 손입니다. 금관국의 마지막 왕 구형왕은 법흥왕 19년(532년) 세 명의 아들을 거느리고 신라에 항복했으며, 신라의 진골귀족으로 편입되었습니다. 구형왕의 막내아들 김무력은 무장으로 활동하며 백제와의 전쟁에서 성왕을 잡아 죽이는 공을 세웠고, 김무력의 장남이었던 아버지 김서현은 대량주도독을 지냈습니다. 어머니 만명은 진흥왕의 아우인 숙흘종의 딸입니다. 열전에는 김서현이 길에서 만명을 보고 눈짓으로 꾀어서 마침내 서로 야합을 하게 되었는데, 서현이 만노군현 충청북도 진천군 태수로 전출되면서 만명도 함께 데려가려 했습니다. 그러나 서현과 만명이 서로 야합한 것을 알게 된 숙흘종은 분노하여 딸을 별채에 가두고 사람들에게 지키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난데없는 벼락이 쳐서 별채를 지키던 사람들이 놀라 정신없는 틈을 타서 만명은 창문으로 도망쳐 서현과 함께 만노군으로 떠났다고 합니다. 유신은 진평왕 건복 12년(595년)에 아버지 서현의 부임지인 만노군에서 태어났는데, 어머니가 그를 갖고 스무 달이 지나서 태어났다고 전합니다. 서현은 경진일 밤에 형혹성과 진성두 별이 자신에게 내려오는 꿈을, 만명은 신축일 밤에 한 어린아이가 황금 갑옷을 입고 구름을 타고 집 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유신을 갖게 되었으며, 원래 경진일 밤에 서현이 꾼 태몽으로 얻었다 하여 이름을 경진으로 지으려던 것을, "날이나 달의 이름을 따서 이름을 지어서는 안 된다"는 예기의 말에 따라, 경과 자획이 비슷한 '유', '진'과 발음이 비슷한 '신'을 써서 이름을 유신이라 짓게 되었습니다. 김유신 장군의 태몽과 탄생 설화에서는 '탄생하면서부터 용모가 비범하고 기골이 장대하였다. 등을 보니 사마귀가 칠성처럼 박혀 있어서 기이했고, 임신 기간이 20개월이라는 모든 점으로 보아 보통 사람과는 다르기에 훌륭한 인물인 영웅이 태어난 것이다.'라는 설화도 있습니다.
생애
건복 46년, 진평왕 51년(629년) 가을 8월, 왕명을 받고 고구려의 낭비성을 치게 된 아버지를 따라 종군했을 때 그의 나이는 35세였습니다. 김유신이 군중에서 갖고 있던 직책은 삼국사기 본기에는 부장군, 열전에는 중당당주로 기재되어 있습니다. 삼국사기 권40 직관지 하에 중당이라는 부대명이 있지만, 이것이 설치된 것은 문무왕 11년(671년)의 일입니다.
1차 접전에서 고구려군에 크게 패한 신라군이 사기가 꺾이고 싸울 의지마저 잃게 되자, 유신은 직접 나서서 적진을 오가며 적을 교란시키고 적군 장수의 목을 베어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이에 고취된 신라군은 다시 용기를 얻어 진격해 고구려군과 싸웠고, 성 안에 남아 있던 고구려군은 두려워한 나머지 더 이상 싸울 의지를 잃고 항복했다고 합니다.
인평 11년(644년) 진골 귀족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관등인 소판으로 승진합니다. 가을 9월에는 상장군이 되어, 왕명으로 백제의 가혜성, 성열성, 동화성 등을 포함한 7성을 점령했습니다. 이듬해(645년) 정월에 서라벌로 돌아와 개선 보고도 하기 전에 다시 계백이 이끈 백제군이 매리포성에 쳐들어왔다는 급보가 날아들자 여왕은 유신을 상주장군으로 삼아 막게 했습니다. 유신은 집에 들르지도 않고 곧바로 달려 나가 백제군 2천여 명의 목을 베는 승리를 거두었고, 음력 3월에 다시 백제의 침공을 격퇴했습니다.
인평 14년(647년) 정월에 상대등 비담, 염종 등이 일으킨 반란(비담의 난)에서 명활성에 들어간 반란군과 맞서 유신은 춘추와 함께 월성에 설치된 진영에 주둔하며 열흘 동안 반란군과 대치했습니다. 그러다 한밤중에 큰 별 하나가 월성에 떨어지는 것을 본 비담이 병사들에게 “별이 떨어진 곳은 반드시 피를 흘린다 하니 이는 여왕이 패하고 내가 승리할 징조다!”라고 말하여 반군의 사기는 크게 치솟았습니다. 이에 김유신은 몰래 허수아비를 커다란 연에 매달아 불을 붙이고 밤에 몰래 하늘로 띄워 보낸 뒤, 병사들에게 “어젯밤에 떨어진 별은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는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반란군이 동요하는 사이에 유신은 명활성을 쳐서 함락시키고, 비담을 쳐서 9족을 모두 죽였습니다. 그 사이 선덕여왕이 서거하고 그 뒤를 이어 선덕여왕의 사촌인 승만공주가 왕위를 계승하여 진덕여왕이 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