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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대왕 소개 생애

by Jiniechoi 2023.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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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소개
출신 : 374년 ~ 412년
담덕이라는 이름으로도 제법 알려져 있으며, 한국에선 "한국사의 알렉산드로스"라는 별칭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삼국사기를 기준으로는 고구려의 시조 동명성왕 추모의 13세손입니다. 광개토대왕릉비에는 17세손으로 기록되었는데, 아마 직계가 아닌 왕계를 기준으로 한 것 같습니다. 18세(만 17세)에 보위에 올라 39세(만 38세)의 젊은 나이에 죽기까지 수많은 업적들을 남겼으며 특히 전쟁에 대해서는 한국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정복자이자, 세종대왕과 더불어 대왕이라는 칭호를 대중들이 가장 자주 붙여 부르는 군주이기도 합니다.
한국의 고대 왕조인 고구려의 역사적 이정표를 뒤바꿔 놓은 위인이자 고구려의 전성기를 연 군주입니다. 즉위하자마자 남쪽의 주요 적국이었던 백제를 쳐서 항복시키는 동시에 서쪽의 후연 등을 상대로 전쟁을 벌여 광대한 요동 지역을 차지했으며, 북쪽의 유목 민족들을 정벌하여 만주를 포함한 넓은 땅을 영토로 삼고 말갈 등 유목 민족들을 휘하에 두어 북쪽 영토를 크게 넓힘으로써 고구려의 국력을 크게 키웠습니다.

 

생애 

생애 
374년(소수림왕 4년), 당시 국왕이었던 소수림왕의 동생인 왕자 이련(고국양왕)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시조 동명성왕의 17세손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세손'을 1)왕대수 또는 2)혈연상 세대수로 보는 설이 있습니다. 
384년에 큰아버지인 소수림왕이 후사 없이 사망하자 아버지 고국양왕이 뒤를 이어 즉위하였으며, 386년 1월, 태자로 책봉되었습니다. 
391년, 고국양왕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으며, 즉위 연도와 관련하여 삼국사기에는 392년에 즉위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 광개토대왕릉비의 기록과는 약 1년의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392년 7월에 군사 4만 명을 거느리고 백제의 북쪽 변경을 공격해서 석현성 등 10여 개 성을 함락시켰습니다. 진사왕은 광개토대왕이 군사를 부리는 데 능하다는 말을 듣고 나가 막지 못하니 한강 북쪽의 여러 부락들이 다수 함락되었습니다. 8월에 백제가 고구려의 남쪽 변경을 공격해 오자, 장수에게 명하여 막게 하였으며, 승기를 탄 고구려는 10월에 백제 북방의 천혜의 요새이자 중요지인 관미성을 20일에 걸친 포위 끝에 쳐서 함락시킵니다. 이 해 12월 백제 진사왕이 구원에서 사망하고 아신왕이 즉위하게 됩니다. 백제는 빼앗긴 성을 회복하기 위해 계속해서 고구려를 공격합니다. 
393년 8월에 아신왕은 진무를 좌장으로 삼고 목책에 이르렀지만, 이는 치욕을 씻기 위한 도발이었기에 이내 회군합니다. 광개토대왕은 백제의 공격을 393년에는 관미성, 394년에는 수곡성에서 격퇴하였으며, 394년에 고구려는 백제의 침략을 방비하기 위해 남쪽 변경에 7개의 성을 쌓습니다. 
395년에는 패수에서 백제군 8000여 명을 생포하고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396년 고구려는 대대적으로 백제를 공격하여 한강 이북의 58개 성, 700여 개 촌락을 점령하고 위례성을 포위합니다. 이때 백제 아신왕에게서 '영원한 노객이 되겠다.'는 항복을 받아 아신왕의 동생과 백제의 대신 10명을 인질로 잡고 개선합니다.

백제와의 전쟁과 더불어, 거란을 정벌하여 소수림왕 8년(378년)에 거란의 침입으로 잡혀갔던 1만여 명의 백성들을 되찾습니다. 395년에는 염수로 진출하여 거란족 패려를 정벌하여 복속시키고 수없이 많은 소, 말, 양 떼들을 노획합니다. 일부 학자들은 삼국사기의 거란 정벌(392년)과 광개토대왕릉비의 비려 정벌(395년)을 동일한 사건에 대한 기록으로 보기도 합니다. 한편 398년에는 숙신을 정벌하여 동북 국경 지대를 안정시켰습니다. 

이후 백제가 왜에 태자 전지를 보내는 등 왜와 동맹을 맺고 고구려에 대적할 준비를 합니다. 
399년에 광개토대왕은 평양으로 순행합니다. 백제와 왜가 신라를 공격하자, 신라는 평양으로 사신을 보내 구원을 청하였고, 이에 광개토대왕은 400년에 신라에 5만 대군을 파견하여 왜군을 물리칩니다. 이때 왜군은 금관가야 종발성까지 퇴각하였고, 고구려군은 금관가야 지역까지 쫓아가 왜군을 격퇴시킵니다. 학계에서는 이때 금관가야의 세력이 급속도로 약해져, 금관가야가 주도하던 전기 가야 연맹이 붕괴하고 대가야가 주도하는 후기 가야 연맹이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광개토대왕은 400년에 신라를 구원하면서 신라 왕을 내물 마립간에서 실성 마립간으로 교체합니다. 이후 고구려군은 백여 년 동안 신라 땅에 머물려 신라에 영향력을 행사하였고, 신라는 고구려에게 조공하는 보호국이 됩니다. 404년에는 대방 지역으로 쳐들어 온 백제와 왜, 가야의 연합군을 궤멸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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